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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신항 하역계약, 이대로는 안된다/ 남기찬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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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항만은 도로 철도 수도 등과 함께 공공재 범주에 속한다. 건설과 운영 방식에 따라 사유재 성격을 띠기도 하나 포괄적 관점에서 공공재다. 항만 운영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 둘 수 없는 이유다. 항만은 줄잡이 고박 검수 운송 하역 작업 등이 결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가 멈추면 나머지가 돌아가지 않는 체계다. 이 때문에 공존 상생 협력 연대 등의 가치가 강조된다.

현실적으로 항만에서는 선사, 터미널 운영사, 고박업체, 검수업체, 운송사 등 이용 주체 간의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 안정적인 선진 항만은 이들의 관계가 힘의 논리가 아닌 기업의 가치와 제도적 장치에 따라 작동되는 항만이다. 특히 선사와 터미널 간의 관계 균형은 선진 항만의 핵심이다. 부산항과 같은 환적 중심항만이 안정적인 항만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선사가 일정 지분을 확보한 터미널은 갑과 을이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다수 터미널 운영사가 난립된 항만은 하나의 터미널처럼 운영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는다. 홍콩항의 최근 모습이다. 사회주의 경제체제 항만에 입항하는 선사들은 항만 관리주체의 결정을 따른다. 중국의 주요 항만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형태는 선사와 터미널 운영사의 관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부산항 신항은 안정적인 선진 항만이 되기에 가장 불리한 여건이다. 하역시설의 절반이 민자부두로 구성되어 있고, 5개의 다수 터미널 운영사가 3대 글로벌 선사 얼라이언스를 상대하는 취약한 시장구조다. 설상가상으로 하역요율은 시장에 맡겨져 있다. 갑의 힘도 세다. 3대 얼라이언스의 화물이 부산항 전체 물동량의 60%에 이른다. 얼라이언스 물동량을 유치하지 못하면 터미널은 경영난에 봉착할 수 있다. 그야말로 글로벌 선사들이 꽃놀이패를 돌릴 수 있는 시장만능주의 판이다.

이러한 현실은 2021년 봄, 신항 터미널 하역계약 과정에서 또 다시 드러났다. 연초부터 진행된 터미널 운영사와 글로벌 선사들의 신규 협상은 기존 계약의 만료일을 2개월이나 넘겨 5월 말에야 마무리됐다. 계약 지체도 그렇지만 협상 과정은 규칙 없는 경기를 보는 듯했다. 화물 확보가 곧 생존인 터미널 운영사들에게는 피 말리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한 얼라이언스는 2015년 이래 세 차례 연속으로 터미널을 옮겨 계약했다. 입맛에 맞는 터미널을 골라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하역요율 수준이 협상의 주가 되는 상황에서 터미널 운영사의 수지는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이는 ESG 경영 도입 등 터미널 운영사 선진화를 한참 먼 얘기로 미룰 것이다. 후진적 운영 관행, 열악한 항만연관 서비스산업 등 현안 숙제도 더 쌓일 것이다.

여기서 짚어볼 원인은 규제완화, 민영화 정책에 있다. 규제완화의 대표작은 하역요율 자율화다. 전 세계적으로 하역요율을 터미널 운영사 손에 맡겨놓는 항만은 많지 않다. 정부의 민간자본 유치 정책도 극히 이례적이다. 선사 등 민간이 터미널 건설·운영 부문에 일정 부분 참여하는 것은 널리 통용된다.

그러나 부산항처럼 건설부터 운영까지 통째로 민간에 넘기는 것은 환적 중심항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환적은 선박에 실려진 화물을 바로 목적지로 향하지 않고 다른 선박에 옮겨 싣는 것을 말한다. 환적 화물은 부두의 배후 교통수요가 없고, 부가가치가 높다. 민자부두는 부두운영 선진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환적 중심항만으로서 하나의 터미널처럼 통합 운영을 추구해야 하는 부산항에 있어서는 걸림돌이다.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며 부산항 관리주체로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러나, 부산항의 선진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먼저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정부와 함께 추진 중인 터미널 통합은 지상 과제다. 터미널 규모를 키우고 운영사 수를 줄여서 하역시장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적정 요율을 관리하는 요율인가제, 수요 연동형 터미널 임대료 등 안정망 역시 필요하다. 동시에 더 이상 현장과 괴리된 정책 추진이 없어야 한다. 해양수산부가 추진하는 민자사업이 대표적이다. 2006년 신항 1, 2부두, 2012년 5부두 개장에 이어 내년에는 2-4단계가 민자부두로 개장한다. 이들은 배타적 운영권을 가지고 있어서 부산항만공사 입장에서는 치외법권 지대와 유사하다. 대안으로 부산항만공사가 민간과 공동으로 부두를 개발하면 민간의 참여를 보장하면서 공공재로서의 기능이 가능한 부두를 만들 수 있다. 이렇듯 선사와 터미널 운영사의 관계 균형을 잡는 것이 환적 중심항, 부산항 선진화의 1차 과제이다. 이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이며 종사자 모두가 행복한, 지속 가능한 부산항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부산항만공사 사장

출처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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